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진짜 이유는?
아래 링크의 기사를 보다가 문득 드는 의문에 주절이를 해봅니다.
(기사中)출산한 지 7개월이 되었다. 나 역시 임신 전 가장 두려웠던 것은 두 가지였다. 아이로 인해 '내'가 없어지거나, '내 일'이 없어지는 것. 그 상실과 단절이 겁났다.
'나'라는 존재는 '엄마'로 대체 될 것이고, '내 일'은 '누군가' 대신 할 것이다.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그럼 혹시나 아이를 원망하게 되면 어쩌지.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다. 아이를 생각하면 언제나 기대와 근심이 동시에 몰려왔다. 설레면서 울적한 날들이었다.(기사中)
이 대목에서 아기 엄마의 사연에 어느 정도 공감되고 짠하면서도 《말괄량이 삐삐》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요?
'말괄량이 삐삐'는 스웨덴의 동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아동 소설 시리즈로 괴력을 지닌 삐삐와 이웃집에 사는 토미, 아니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는 동화입니다. 국내엔 1977년 KBS에서 처음으로 방영되었고 연극, 애니메이션 등의 여러 장르로 리메이크되면서 더욱 많이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원작은 위와 같은데 제가 머무른 지점은 바로 아래 《책 제목》입니다. 내용이 아니라...
피터팬 증후군은 1970년대 후반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D.카일리가 제창한 개념으로, 어른들 사회에 끼지 못하는 ‘어른아이’ 증후군을 겪는 남성들을 일컫는 의학 용어입니다.
1. 아이로 인해 '내'가 없어지거나,
2. '나'라는 존재는 '엄마'로 대체 될 것이고,
3.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위의 내용들을 반박하거나 비난할 의도는 없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이 당연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봤을 때 아이가 자라면서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거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또한 성장과정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입장이 달라지는 것도 그중 일부라고 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위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바꿔서 받아들여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1. 아이로 인해 내가 없어지거나가 아니라... 나를 닮은 아이와 내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2. 나라는 존재는 엄마로 대체 될 것이고가 아니라... 나에게 엄마라는 역할이 하나 더 주어지는 것입니다
3.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면 어쩌지가 아니라... 일자리를 말하는 것이라면 돌아갈 확률이 희박한게 팩트입니다만, 중학생으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이 또한 자연스러운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럼 아이 엄마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냐는 반문을 할 수 있는데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질수 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상황에 당면하게 될 것이니까요.
다시 말괄량이 삐삐로 돌아와서
‘말괄량이 삐삐’ 인종차별 논란, 무슨 일이? 2014.12.05
위의 기사를 보면 말괄량이 삐삐의 과거 영상물에 지금과 맞지않는 부분에 대한 수정이 2014년에 논란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찬반 여론도 뜨거웠던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바꿔야할 부분이 있다면 검토를 해봄이 바람직하다 여겨집니다. 출산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함께👌
2017년 기사에 따르면 《한아이를 대학까지 보내는데 필요한 양육비가 4억》이라는 추산이 보도 되었습니다. 소 한마리 팔아야 대학 보낸다는 얘기는 더이상 견줄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린 거겠죠📌
[친절한 경제] 대학까지 양육비 4억 원
여기서 다시 한번 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이 시대가 아이를 낳지않으려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요?
더 이상은 잔소리가 될거 같아 오늘 포스팅은 여기서 급마무리하고 다음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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