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두구육(羊頭狗肉)의 뜻 및 유래
10월의 마지막 밤에 명태균이 쏘아 올린 윤석열 목소리 폭탄
https://youtube.com/shorts/MrneB8ujK2g?si=7W7WvavHGNEOiWG3
명태균이 윤석열 대통령의 목소리를 공개하면서 폭탄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이에대해 대통령실의 대응이 나오는 과정에서 이준석의 이름이 거론되었습니다.
"공천 얘기해 좋게 얘기했을 뿐"‥연락 끊었다더니 통화 시인 (2024.10.31/뉴스데스크/MBC)
https://youtu.be/LRWLR3HxhRM?si
그러자 이런 대응에 대해 이준석이 《양두구육》 이라는 말을 내질렀는데요🤬
그래서《양두구육(羊頭狗肉)의 유래》를 살펴보았습니다.
晏子(영자 平仲)는 중국 춘추시대 齊나라 대부였다. 靈公·莊公·景公등 세 임금을 섬겼으며 경공 때에는 재상이 되어 제나라를 잘 다스렸다.
여우갖옷 한벌을 30년이나 입을 정도로 생활이 검소하고 몸가짐에 절도가 있었으며 대인관계가 원만하여 孔子가 "안평중은 사귐을 잘하는구나. 오래일수록 상대방을 공경하는구려!(晏平仲 善與人交久而敬之: 論語 公治長)"라고 칭찬할 만큼 현재상이란 이름을 후세에 전하는 인물이다.
안자가 영공을 섬길 때의 일이다. 영공은 평소 男裝美人을 좋아했다. 가까이 하는 궁녀 몇 사람에게 남장을 시켰다. 궁녀들 사이에는 이를 시샘하여 앞다투어 남장을 하였다. 비빈(妃嬪)을 제외하고 궁중의 여인들은 모두 남장미인이 되었다.
이의 물결은 궁밖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수도에서 지방으로 번졌다.
이에 놀란 영공은 남장을 금하는 긴급령을 내렸다. 그러나 영공이 좋아하는 궁중의 남장미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아니했다.
영공은 거듭 강력한 禁令을 내려도 그때에 그칠 뿐 곧이어 남장여인은 거리를 활보하였다.
📣 영공은 골치가 아팠다. 이의 대책을 안자에게 물었다.
📣 안자는 "主上께서 궁 안에서는 이를 묵인하시면서 궁 밖의 일반 국민에게는 금하라 하십니다. 이 금령이 시행되지 아니하는 원인은 바로 궁 안에 있읍니다. 마치 쇠머리를 문에 걸어놓고 속으로는 말고기를 팔고 있는 것(懸牛頭於門而賣馬肉於內)과 다름이 없읍니다"라고 아뢰었다.
절대권을 가진 군주이지만 일단 금령을 내렸으면 내 주위부터 정리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라는 뜻이다[晏子春秋]
후한 光武帝가 丁邯(정한)에게 내린 글 가운데에도 위의 晏子의 말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쇠머리를 걸어놓고 말고기를 파는 것(懸牛頭賣馬膊)이나, 盜 (도척)이 孔子의 말씀을 제말처럼 지껄이고 다니는 것과 같다」라고 지적되어 있다. 馬肉이 馬膊(마박)으로 변한 것이다.
도척은 춘추시대 도둑의 괴수로서 공자와 같은 시대의 인물이다. 賢人 柳下惠의 아우였으나 도둑의 무리 9천을 거느리고 전국을 휩쓸며 약탈과 잔혹행위를 하는 극악무도한 자였다. 이러한 위인이 공자의 말씀을 지껄이고 다닌다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다. 마치 허울 좋은 간판을 내걸고 이면으로는 모리·사취·기만을 일삼는 사기꾼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 《孟子》의 양혜왕편(梁惠王篇)에 양으로 소를 바꾼다(以羊易牛 이양역우)는 구절이 나온다, 晏子나 光武帝의 말가운데의 牛頭馬肉도 以羊易牛가 되어 소와 말이 양과 개로 바뀌어 마침내는 羊頭狗肉으로 변한 것이다.
淸나라 錢大昕이 찬한 恒言錄에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懸羊頭賣狗肉)」는 구절이 나온다.
💢 이것으로 보아 양두구육은 아마도 우두마육이 변하여 이때부터 쓰인 것 같다. 성어의 변천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좋은 물건을 간판으로 내세워 저질품을 파는 상행위나, 외모나 언변은 번지르르하면서 돌아서선 갖은 비열한 짓만을 하는 친구를 비유하여 양두구육이라 일컫는다.
(내용中)
양두구육 2009.01.01
https://www.moleg.go.kr/mpbleg/mpblegInfo.mo?mid=a10402020000&mpb_leg_pst_seq=126251
이양역우(以羊易牛)는 맹자의 양혜왕 편에 나오는 고사다.
왕이 어느 날 시종이 흔종(釁鐘 : 새로 종을 주조할 때 피를 바르는 희생제)에 사용되는 소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다, 소의 모습을 불쌍히 여겨 소 대신 양(羊)을 희생하도록 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시킨다는 뜻으로도 쓰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는 맹자 철학의 핵심인 측은지심(惻隱之心)를 나타내기 위해 쓰인다는 것을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배웠다.
철학자들은 양혜왕이 소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곧 사람의 본성이며 이것이 측은지심이라고 분석했다.
맹자는 나아가 이런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리라고 했다. 맹자는 그러면서 혁명이란 이러한 측은지심이 없는 군주를 없애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하나라의 걸(桀)왕과 상나라의 주(紂)왕이 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걸주를 중국의 대표적인 폭군으로 꼽았다.
맹자는 양혜왕이
❌️어떻게 백성들이 임금을 죽일 수 있느냐고 묻자,
⭕️‘일개 필부인 주를 죽인 것이지 군주를 죽인 것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즉 왕이 왕 노릇을 하지 못하면 일개 필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맹자의 이러한 가르침은 왕은 백성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기사中)
[데스크칼럼] 이양역우(以羊易牛)와 새로운 리더십 2017.01.04
https://m.ajunews.com/amp/20170104160738723
민간인과 '공천' 얘기했는데‥"기억할 만한 일 아니었다" (2024.10.31/뉴스데스크/MBC)
https://youtu.be/AcCUSkSFJB4?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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